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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의 시선으로 본 농인 가족 이야기, ‘나는 보리’

김수희 SDGs 시민기자단 0 1396
차근차근 상영전 ‘나는 보리’,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지속 가능성에 대해 말하다

지역과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화와 대화의 장이 마련됐다.


올해 10월 21~23일, 축제극장 몸짓에서 ‘차근차근 상영전’ 행사가 진행됐다. 춘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와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공동 주최 및 주관했다. 광장에서는 아나바다를 실천하는 ‘봄내누리 벼룩시장’과 버려지는 재료로 작품을 만드는 ‘RERE(리리프로젝트)’ 등 지속가능한 목표를 실천해보는 다양한 부대행사 역시 준비되어 있었다.

 23일 상영된 김진유 감독의 ‘나는 보리’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바닷가 근처 마을의 한 가족의 얘기를 다룬다. 열한 살 소녀 보리는 가족 중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 엄마와 아빠, 남동생 정우는 농인이다. 보리는 점차 수어로 소통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혼자만 다른 것 같은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에 보리는 소원을 빌게 되는데, 그 소원은 다름 아닌 소리를 잃고 싶다는 것이었다.

 보리가 등굣길에 소원을 비는 것을 여러 차례 보여주면서도, 소원의 내용은 영화의 후반부에 되어서야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제시된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감독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은 보리의 소원이 무엇인지가 영화를 보며 가장 조마조마하고 걱정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의 화목한 분위기와 보리의 해맑은 웃음을 보며 제발 보리의 소원이 ‘가족들이 들리게 해주세요’이길, ‘나 역시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해주세요’ 같은 우울하고 파멸적인 방향이 아니기를 바랐고, 장애로 인한 불편함을 겪게 되는 세상에 주인공 보리가 이미 물들지 않았기를 소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보리의 소원은 소리를 잃는 것이었고, 몹시 안타까운 감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화에서 관객은 생각지도 못한 충격과 신선한 깨달음을 얻게 됐다. 환하고 아름다운 영상미는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음악과 함께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밝고 따스하게 한다. 감독은 이에 대해 의도된 사항으로 영화의 분위기를 마냥 무겁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처럼 영화 속에 비추어지는 보리와 가족은 분명히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농인인 그들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불행하고 바뀌어야 할 것으로 정의되어야 할까. 보리는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싶었고, 같이 들리지 않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마치 틀렸다는 듯한 동정의 시선을 받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관객은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고 차별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면서 장애 그 자체가 행복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모순된 일이며, 그것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지속가능발전목표는 모든 종류의 불평등 해소를 표방하며, 나이, 성별, 장애 여부, 지위 등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 대한 사회, 경제, 정치적 포용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세부 목표를 가진다. 포용성이란 남을 너그럽게 감싸 주거나 받아들이는 성질을 의미한다.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데서 그 실천을 시작할 수 있다.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축구를 잘 해서 친구들에게 인기를 얻고 대회에 나가 거둔 성취로 뿌듯해하는 남동생 정우, 고된 뱃일을 하면서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아빠, 정우와 보리를 다정하게 보살펴주고 가정을 이끌어나가는 엄마, 그리고 보리는 그 점을 일깨워주기 위해 환한 미소로 관객을 맞은 것일지도 모른다.

 김진유 감독은 ‘나는 보리’에서의 보리처럼 농인 부모에게서 자란 청인 자녀인 ‘코다’이다. 감독의 농인·청인 사회에서의 진솔한 경험을 담아 ‘나는 보리’를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따뜻한 드라마로 녹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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